이제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약 30여 일 남았다. 장애인단체 등의 장애계에선 2024 총선장애인연대를 꾸려, 장애인 당사자의 요구를 수렴한 공약안을 마련했다. 장애계에선 이 공약안이 제22대 국회에서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각 정당에 공약안을 전달하며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올해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한 정책과제 발굴 전략기획단이 의료전문가 중심이라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의 의견반영이 어려운 구조다. 이에 장애계에서 장애인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건강관리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장애인 건강관리계획 수립 TF’를 구성해 올해 2월 말에 장애유형별 요구를 발표했다.
그런데 두 가지를 보면서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먼저, 제1차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 요구와 관련해서 중점과제 중 발달장애 조기진단을 위한 시스템 강화가 있고, 구체적인 내용엔 영유아 지적·자폐성 장애 진단도구(기본/정밀) 고도화를 하되 연구조사와 효과성 평가, 당사자·가족 참여가 필요함을 언급했다. 또한, 발달장애의 원인 규명과 치료 프로그램 개발. 외국의 우수한 보건의료 프로그램 도입 등도 제시했다(출처: 제1차 장애인 건강보건관리종합계획 건의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전 글에서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의 경우 어렸을 때 당신께선 자폐성 장애를 발견했음에도, 나 자신이 장애가 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이들이 나에게 낙인을 씌울까 두려운 나머지, 내가 자폐가 있단 사실을 숨기고 다니셨다. 그로 인해 나는 장애가 있는 걸 모른 채 고통을 겪고, 학교생활에서도 괴롭힘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시간이 지나 30대 때 교회 세미나 때 장애 특성에 대한 걸 배우면서 나 자신에게도 자폐성 장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됐고, 1년 후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 장애는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됐다. 이후 장애 진단을 하게 됐고, 결국 자폐성 장애인으로 등록됐다. 이와 관련해 진단비용은 국가 지원이 아닌 전부 가족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갔다.
실제로 발달장애인법에는 지적·자폐성 장애 진단 대상을 오로지 영유아에게만 한정했다. 그러다 보니, 성인기 이후에 자신의 자폐 특성 등의 신경다양성을 발견한 당사자들이 장애 진단을 받으려면 비용은 전부 자부담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경제 상황 등의 사회환경에 따라 진단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제안하는 게 필요한데, 그런 제안이 부재했다.
더욱이 지적·자폐성 장애는 치료와 완치가 안 됨에도, 이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단 제안이나, 행동문제 치료 전문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중점과제가 있는 건 자폐성 장애가 뇌의 작동방식에서 오는 차이이자 다양성임을 모르거나, 알아도 이를 외면하려 한 채 나온 요구안이라고 본다. 신경 전형적 세상으로의 적응을 강요하는 식의 요구라 반인권적이란 생각마저 든다.
장애등록 여부에 상관없이 지적·자폐성 장애인인 경우 학교에서의 괴롭힘과 왕따 등의 학교폭력으로 트라우마가 심각하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연구가 최근에야 있었을 정도로 장애인의 학교폭력 트라우마 연구는 거의 드물다. 심지어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의 학교폭력 관련 상담체계도 전무하다시피 하다. 따라서 이들의 정신건강 회복·증진을 위해 학교폭력 트라우마 연구 및 관련 상담체계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대책을 요구해야 하는데 그 내용을 찾을 수 없다.
한편, 2024 총선장애인연대 요구안에선 미등록 정신장애인을 언급해 눈여겨 볼만하다. 정신장애인의 등록 범주가 좁아(정신적 외상, 신경증, 약물중독, 학습장애 등) 장애등록을 못 하거나, 사회적 편견과 혐오적 인식으로 장애등록 하지 않는 정신질환자를 미등록 정신장애인으로 정의한다(출처: 2024 총선장애인연대 장애인 공약 요구안 19페이지, 2024 총선장애인연대).
정신장애인 복지서비스 지원 제공과 관련된 공약에서 미등록 정신장애인이 당연히 포함돼야 하기에 이를 언급한 건 총선장애인연대 사상 처음이기도 해서 고무적이긴 하지만, 미등록이 정신장애인에게만 있을까? 과거의 필자(지금은 장애 등록됐지만 말이다.)와 같이 사회적 낙인이 우려돼 미등록한 자폐 특성이 있는 장애인, 같은 자폐 특성 있는 ADHD임에도, 법정 장애가 아니기에 장애등록을 하지 못하는 자폐성 장애인도 있다.
그래서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된 공약 요구 안에서도 미등록 장애인에 대한 공약 요구가 나왔어야 하는데, 미등록 정신장애인만 동료지원, 고용지원 등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공약만 있는 점이 조금은 걸린다. 미등록을 정신장애인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도 포함시켜 미등록 장애인으로 정의를 내리는 게 공약 내용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에 대한 정의를 사회적 상호작용까지 포함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으로 장애를 정의하며 의료적 모델의 정의에서 탈피해, 미등록도 장애인연금, 사법지원, 고용장려금,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이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가까운 법이라, 차라리 장애인권리보장법 등에서 정의하는 게 더 나아 보이기는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 계류 중이라 조치 취하지 않으면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될 것이란 게 조금은 아쉽기만 하다.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 사회통합을 위한 평생교육 시행을 한다는 공약도 총선장애인연대 요구안에 나오는데, 정신건강복지법엔 평생교육 지원을 한다는 법적 근거가 있긴 하다.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를 별도 운영하듯이, 심리적 고통 및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 장애 특성을 반영한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 평생교육센터 설치와 운영이 필요하다고 공약 내용에 나온다.
그런데,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의 커리큘럼 내용을 보면, 대체적으로 돌봄 요구가 큰 지적·자폐성(또는 저인지) 장애 학생들에게 맞는 교육 커리큘럼이지, 고인지 장애 학생 등에게 맞는 교육내용은 아니다. 장애 학생 전체의 다양한 욕구, 선호, 의지 반영이 미흡한 교육 커리큘럼이고 통합된 게 아닌 분리된 환경 속의 평생교육이다. 그러다 보니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어떠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은 장애인이 98.5%가 됐다는 결과가 이상한 게 아니다.
따라서 정신장애 학생을 포함해 장애 학생의 다양한 욕구, 선호, 의지를 알 수 있는 당사자 욕구 조사가 시행되고, 이를 통해 자기선택권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통합적 평생교육 커리큘럼을 도출해,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에서 이런 커리큘럼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내용들이 고민되어 공약안에 나왔다면 좋았는데, 그런 고민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 아쉽기만 하다. 물론 정신장애인 평생교육센터 예산 마련과 설치·운영 의무화엔 어느 정도 찬성하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고등교육에 대해 정신적 장애인 관련 합리적 변경 명시 등 이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 및 공약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있을 때,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이 괜찮은 질의 일자리에 취업할 실마리가 보이는데, 그런 요구안이 없다. 이럴 경우, 이들은 단순노무직 및 계약직 등을 계속 전전할 여지가 높으며 그런 추세가 여전할 것이 우려된다.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인은 평생교육만 받아야 한단 말인가? 고등교육 등 장애인 교육권에 있어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할만한 다양한 선택지를 요구안에서 제시하지 못한 게 좀 아쉽다.
지역발달장애인지원센터 운영법인 확대 부분에선 장애인복지시설 중 장애인복지관 등 장애인 지역사회재활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에 시군구 단위의 지역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운영을 위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공약 내용이 나온다. 장애인복지관은 이용인 대부분이 지적·자폐성 장애인이라 이들에 대한 이해가 높고, 진단·사정에서 강점이 있어, 다방면 전문가들과 함께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이 가능하기에(출처: 2024 총선장애인연대 장애인 공약 요구안 22페이지, 2024 총선장애인연대), 시군구 단위의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운영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기는 하겠으나, 장애인복지관이라는 곳이, 사업 등의 성과를 따지는 등 성과주의에 상당히 많이 얽매인 조직이기도 하다.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해 개인별 지원계획을 세울 때나 이들을 지원할 때 은연중에 성과주의적 측면을 강요할 수도 있고, 이렇게 되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장애인복지관에 있는 관장, 사회복지사 등에게 권리협약 내용이 충분히 반영된 장애인식 교육을 정기적으로 훈련 수준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사례회의나 개인별 지원계획을 세울 때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욕구, 선호, 의지를 진정으로 반영하게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걸 고민한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농인과 관련해서 농인과 정부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게, 국립국어원 역할이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공약도 있는데, 사실 국립국어원이라는 곳은 자폐성 장애인과 관련해서 차별적인 말인 자폐증이란 용어를 통계청과 함께 쓰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통계청, 국립국어원 등에서 자폐증이라는 말을 삭제하고 자폐성 장애 인식 제고하는 등의 장애인식 증진 행동계획을 국가, 지자체 차원에서 수립해야 한다는 요구안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없다.
농인들이 수어통역 화면이 작은 등 선거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는 공약도 보인다. 그런데 선거공보가 알기 쉽지 않고, 선거할 시 선거용지가 문자로만 되어 있기에 지적장애인에게도 공직선거법 개정은 필요하다. 알기 쉬운 선거공보에 정당 마크가 새겨진 선거용지 등의 내용을 공직선거법에 추가해 지적장애인의 참정권을 증진하는 내용의 공약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 또한 없었다.
이외에도 공공기관, 정부, 지자체에선 쉽거나 맥락에 따르는 언어나 표현으로 된 자료를 생산하는 것이 의무적으로 되어 있지 않아, 이를 의무 생산하도록 하고, 발달장애인법 시행령에 쉽거나 맥락에 따른 자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도 명시하라는 등의 요구사항이 있어야 하지만, 이마저도 발견되지 않는다.
장애인학대특례법 제정은 중요한 거이긴 하나.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예산증대 요구가 빠진 건 특례법의 실효적 시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고령 지적·자폐성 장애인 관련 시설 확충 요구 시 시설대상에 요양시설, 그룹홈 등 시설의 특성이 있는 곳을 예시로 넣은 부분은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한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적·자폐성 장애인 동료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볼 수 없었던 부분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발달장애인 의료 지원 체계 구축이나 발달장애인 근로자 지원센터 설립과 같은 요구가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총선장애인연대의 공약안이나, 장애인 건강보건관리 종합계획을 볼 때, 미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포함해 정신적 장애인의 권리 증진을 위한 요구사항은 좀 미흡한 면이 없지 않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권리 주체는커녕 돌봄 대상으로 보는 정책 논의가 좀 우세하지 않았나 싶다. 한 마디로 정신적 장애인의 권리 증진에는 미흡한 정책 논의였다고 말하고 싶다.
장애인 정책 논의에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등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제7호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번 논의라고 생각한다. 정책·사회 참여에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등이 배제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는 물론 장애인계도 공식통로를 마련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정신적 장애인 권리 증진 관련 논의들이 더는 미흡해지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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